설 명절을 앞둔 오전, 아파트 위층에서 내려다본 거리는 유난히 한적했다.
차들은 드문드문 지나가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딘가 느슨해 보였다. 명절 특유의 들뜸보다는, 잠시 멈춘 도시의 숨결 같은 고요함이 감돌았다.
창밖으로는 겨울의 끝자락이 매달린 바람이 흘렀다. 며칠 전만 해도 ‘이제 봄이 오는구나’ 싶었는데, 아직 공기 속에는 차가운 결이 남아 있었다. 봄은 약속처럼 다가오지만, 완전히 오기 전까지는 늘 이렇게 망설인다.
오전 11시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소파에 기대어 휴대폰을 들었다. 습관처럼, 아주 아무 생각 없이. 배달의민족 앱을 켰다. 그리고 검색했다.
수유리우동집. 잔치국수의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참치김밥의 고소함, 식욕을 깨우는 매콤한 비빔국수의 붉은 양념.
‘그래, 오늘은 이 조합으로 가자.’
메뉴를 하나씩 담았다.
잔치국수, 참치김밥, 비빔국수.
결제창을 열자, 화면 위에 또렷하게 적혀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배달팁 무료! 1,000원 할인”
대기업 평균 73.47점과 비교하면, 이 숫자는 더욱 적나라해진다. ‘상생’이라는 단어와 ‘체감’이라는 단어 사이에 놓인 간극이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수수료 적정성 점수였다. 38.2점.
38.2점...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결제창에 찍혀 있던 2만2,500원이 떠올랐다.
가격은 숫자로 보이고, 부담은 체감으로 남는다.
이렇게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니, 비로소 구조가 보였다.
배달료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단지 다른 이름으로, 다른 항목으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배달의민족 플랫폼은 선택이 아니다.
많은 자영업자에게
이미 ‘생존 통로’가 되었다
입점업체들은 월 매출의 36%를 배달앱에 의존하고 있다.
주문 건수의 34.6% 역시 플랫폼을 통해 발생한다.
평균 이용 기간은 45.1개월.
이 숫자들은 말해준다.
이미 이 관계는 단순한 입점 계약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을.
그런데 그 생존의 통로에서
입점업체가 체감하는 ‘적정’ 중개수수료는 평균 4.5%.
적정 배달비는 최대 2,300원.
현실은 다르다.
입점업체의 자체 라이더 이용 비율은 90.9%.
이 경우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평균 배달비는 3,333원.
지역 배달업체 이용 시 평균 2,808원보다 높다.
전반적인 이용 만족도는 63.2%.
편리함, 접근성, 주문 안정성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배달앱 중개수수료와 배달비에 대한 만족도는 28.3%에 그친다.
나는 그 숫자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63.2%의 편리함 위에,
28.3%의 불만이 겹쳐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결제창에서 느꼈던 4,000원의 이질감은 수수료 적정성 38.2점과 맞닿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배달료 0원이라며…”
나는 다시 혼잣말을 했다.
배달료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항목 속으로, 다른 이름으로 흡수되었을 뿐이다.
사장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 매출의 36%를 의존하는 구조라면 그들은 떠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가격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수료는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O2O는 원래 편리함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커질수록
편리함은 ‘통행료’가 되었다.
밤 9시 50분.
학원을 마친 아들을 마중 나갔다.
“배고파.”
아들의 짧은 한마디에 우리는 집 앞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새로 단장한 세븐일레븐.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곳은 잘 들르지 않는 가게였다. 매장 관리도 어수선했고, 상품 구성도 근처 GS25보다 못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자연스레 발길이 뜸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말 리모델링을 한 뒤,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동선은 정돈됐고, 할인 상품은 한눈에 보이게 배치됐다. 진열은 깔끔했고, 계산대 앞은 활기가 돌았다.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듯한 안정감까지 느껴졌다.
지금 우리 집 앞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아들의 ‘최애’ 편의점이 됐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면, 사람들의 취향도 바뀐다.
한때 O2O(Online to Offline)는 혁신이었다. 전화 주문을 대체했고, 전단지를 밀어냈으며, 배달 풍경을 통째로 바꿨다. 그 흐름이 지금의 배달의민족을 만들었다.
하지만 AI 시대가 도래했다.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또 다른 플랫폼이 지금의 질서를 다시 흔들 날도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제 O2O의 종말일까. 아니면 내가 이제야 가격표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익숙했던 아이콘.
지난 수년간 우리 가족의 저녁을 책임졌고,
바빠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 댁까지
마음 대신 음식을 전해주던 그 이름.
솔직히 나는 그동안 쿠팡이츠도, 요기요도 거의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가격과 혜택은 비슷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은 자연스럽게 내 일상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오늘, 숫자들을 들여다본 뒤, 나는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속였다는 분노라기보다, 내가 너무 쉽게 편리함에 기대어 있었다는 자각에 가까웠다.
“그래도… 편했는데.”
화면을 길게 눌렀다. 아이콘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배달의민족이여, 안녕.”
작게 중얼거리며 삭제 버튼을 눌렀다.
삭제...
아이콘이 사라졌다. 편리함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