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역에 적용되는 ‘최대 이윤’이라는 잣대
시적 언어는 인간 사유의 잉여를 보존하는 장소
[메타X(MetaX)]임지훈의 「인공지능 시대의 ‘시’에 대한 예비적 고찰」은 얼핏 보면 익숙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AI가 창작을 대체하고, 시의 자리를 위협하며, 인간의 고유한 표현 영역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AI 시대를 하나의 돌연한 사건으로 이해하는 관점 자체를 의심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지금의 위기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사회를 지배해온 도구적 이성이 AI를 통해 더욱 극단적으로 완성된 결과다. 다시 말해 문제의 본질은 AI 자체라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을 잠식해온 효율과 계산, 정합성과 생산성의 논리가 이제 언어와 예술, 그리고 시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데 있다.
많은 글들이 AI를 인간과 대립하는 새로운 존재로 상정한다. 하지만 이 논문은 AI와 인간의 대결 구도로 가면 오히려 핵심이 흐려진다고 본다. AI 시대를 어떤 사건적 단절로 보는 순간,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은 사회적 합리성이 이미 오래전부터 도구적 이성에 귀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AI를 근대 산업사회가 밀어붙여온 계산 가능성, 수량화 가능성, 효율 중심성의 최종 국면으로 읽는다. 예술이 오래전부터 놓여 있던 취약한 조건이 AI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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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시’에 대한 예비적 고찰 임지훈, 2025 |
사유하는 인간에서 프롬프트 관리자까지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사고하고 언어를 밀고 나가는 존재라기보다, 점점 사유의 조건과 결과물을 조정하는 관리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지 작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가 논리적 필연성에서 확률적 정합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AI는 의심, 부정, 모순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인간적 의미의 사유가 아니라, 데이터의 경향성을 평균화하고 반복률이 높은 것을 정합적인 것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외적인 것,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것, 낮은 빈도로 출현하지만 중요할 수 있는 진실은 체계적으로 밀려난다. 이 논문이 AI를 단순한 편의 도구로 낙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선호할 만한 형태의 답변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를 취사선택하고 가공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점에서 이미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일부가 된다고 본다. 이 주장은 다소 강경하지만, 적어도 예술과 문학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예술은 본래 평균적 선호를 충족시키는 장르가 아니라, 오히려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것, 당장 효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을 붙드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이 보는 시의 위기: 창작의 위기보다 언어의 위기
이 글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시의 위기를 창작 주체의 교체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짜 문제는 누가 쓰느냐보다, 어떤 언어가 사회의 지배적 언어가 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프롬프트 언어는 목표를 명시하고, 조건을 분절하고, 결과를 평가 가능하게 만드는 지시적 언어다. 여기서는 모호성, 다의성, 여백, 리듬 같은 시적 요소가 가치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로 취급된다. 그런 점에서 프롬프트 언어가 사회 전반의 기준이 되면, 시적 언어는 단순히 경쟁에서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상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시의 언어는 본래 직관적이지 않고, 효율로 매개되기 어렵고,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을 떠맡는 언어인데, 프롬프트 언어는 바로 그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이 시의 위기를 “존재론적 위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문은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와 시집 『시 쓰는 이유』, 그리고 인간 시인과 AI의 협업 사례인 『9+i』를 언급하면서, 시의 본래적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로 본다. AI는 시적 장치를 흉내 낼 수 있고, 그럴듯한 문장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적 사유의 흔적, 언어를 밀고 가는 내적 필연성,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감수하는 언어적 분투까지 품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읽기의 종말이 아니라, 읽기의 소비화
AI 시대의 독자는 더 이상 한 텍스트와 비판적 관계를 맺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히 생성되는 결과물 중에서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사용자에 가까워진다. 저자는 이를 “읽기(reading)가 소비(consuming)로 대체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문학은 사유의 매개가 아니라 맞춤형 정서 콘텐츠로 기능하게 되고, 독서 행위는 비판적 성찰의 시간이 아니라 즉각적 만족의 인터페이스로 변형된다. 현재 문화 소비 전반을 AI가 가속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형식 vs 메시지
저자는 아도르노를 바탕으로 예술과 시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 그에 따르면 예술의 가치는 직접적인 체제 비판의 메시지나 감성적 자극에 있지 않다. 핵심은 형식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효율로 환원되지 않으며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보존하는 형식으로서의 시다. 많은 AI 시대 예술 논의가 인간 고유성의 증거를 감정, 창의성, 영혼 같은 추상어에서 찾으려 한. 반면 저자는 그런 낭만적 방어선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대신 시의 가치는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형식으로, 무엇을 끝내 환원되지 않게 남겨두는가”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 시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시의 정의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시스템이 창작 주체를 대체하고, 작품이 감각적 상품들과 등가 교환되는 상황일수록, 시는 환원 불가능한 인간됨을 증언하는 장소로서 더욱 또렷해진다. 시가 살아남는 이유를 시장성이나 희소성, 인간 저자의 권리 같은 외적 조건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끝내 흡수하지 못하는 어떤 잔여를 보존하는 데서 찾고 있다.
[METAX = 류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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