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신과 창작자 보호의 균형을 모색
인도 정부가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저작권의 충돌 지점에 대해 독자적인 정책 해법을 제시하며, 글로벌 AI 규범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 상공부 산하 산업·내부무역진흥국(DPIIT)은 2025년 12월 9일, 생성형 AI와 저작권 법제의 관계를 다룬 작업보고서(Working Paper) 1부를 공식 공개하고, 향후 제도 개편 가능성을 포함한 정책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번 보고서는 2025년 4월 28일 구성된 8인 위원회가 약 8개월간 검토한 결과물로, 기존 저작권 체계가 생성형 AI가 제기하는 새로운 법적·경제적 쟁점을 충분히 다루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DPIIT는 현행 법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창작 생태계와 AI 산업 모두에 구조적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먼저 글로벌 논의에서 제시돼 온 주요 접근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여기에는 AI 학습에 대한 전면적 면책(블랭킷 면제),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DM) 예외 조항(옵트아웃 포함 또는 미포함), 자율적 라이선싱, 확장된 집단관리제도(ECL)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들 모델 모두가 인도 현실과 장기적 창작 유인 측면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판단했다.
특히 위원회는 ‘제로 프라이스 라이선스’, 즉 AI 학습에 저작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모델을 명확히 배제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접근이 단기적으로는 AI 개발 비용을 낮출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인간 창작 활동에 대한 보상을 약화시켜 콘텐츠 생산 자체를 위축시킬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AI 발전이 오히려 창작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DPIIT 위원회는 기존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는 하이브리드 정책 프레임워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모델의 핵심은 ‘학습 단계와 상업화 단계를 분리’하는 구조다. 우선 AI 개발자는 합법적으로 접근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개별 협상 없이 학습 목적의 포괄적 라이선스를 부여받는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 단계에서의 과도한 거래 비용과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는 구상이다.
대신 저작권 보상은 AI 도구가 상업화되는 시점부터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로열티의 요율은 정부가 임명한 위원회가 설정하며, 해당 결정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 이는 행정 권한의 자의성을 견제하는 장치로, 창작자와 AI 기업 모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로 풀이된다.
로열티의 징수와 분배는 중앙집중형 기구가 담당하게 된다. 위원회는 이를 통해 거래 비용을 최소화하고, 대형 기업뿐 아니라 중소 AI 개발사와 개별 창작자도 제도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지배력이 큰 글로벌 기업에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자율 협상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이번 보고서는 기술 혁신과 창작 권리 보호를 ‘제로섬’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DPIIT는 AI 학습 자체를 봉쇄하거나, 반대로 저작권 보호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극단적 선택 대신, 시간차 보상 구조를 통해 양측의 이해를 조정하려는 현실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는 최근 디즈니–오픈AI 협력이나 구글·오픈AI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이 잇따르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작업보고서를 30일간 공개해, 산업계·학계·창작자·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계획이다. DPIIT는 “이번 문서는 최종 결론이 아니라, 제도 설계를 위한 출발점”이라며, 공청회와 후속 보고서를 통해 보다 정교한 정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접근법이 향후 글로벌 AI 저작권 논의에서 중요한 참조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럽연합이 규제 중심 접근을 강화하고, 미국이 산업 자율에 무게를 두는 상황에서, 인도는 보상 기반의 제도적 타협안을 제시함으로써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DPIIT 보고서는 생성형 AI 시대에 저작권이 단순한 법적 장벽이 아니라, 혁신과 창작을 동시에 지속시키기 위한 정책 설계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AI와 인간 창작의 공존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인도의 실험이, 향후 국제 규범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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