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전력 폭증·미국 에너지 패권 회귀가 촉발한 글로벌 원전 재부상
인공지능(AI) 가속화가 전력 수급의 핵심 변수를 뒤흔들면서, 한국에서 원전 재가동과 수명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급등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에너지부(DOE)가 에너지 생산 중심 정책으로 회귀하는 조직 개편까지 발표하면서, 글로벌 원전 시장이 다시 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부터 차세대 SMR 수출, 원전 AI 기술 도입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전개하며 국내외 원전 산업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AI 시대의 전력 소비 현실을 기반으로, 한국 원자력 산업이 맞이한 구조적 변화의 지형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AI 전력 수요 폭증, 원전 재가동 논의를 ‘정책의 중심’으로 밀어 올리다
한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8.2TWh에서 2038년 30TWh까지 약 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전력 수요도 같은 기간 106GW에서 145.6GW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대형 원전 3~4기에 해당하는 전력 규모다. AI 모델 개발, 생성형 AI 서비스 상시 운영, GPU 클러스터 확대로 인해 데이터센터 가동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결과다.
전력 인프라 확충에만 최소 6~7년이 소요되는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AI 전력 수요 증가는 “당장 확보할 수 있는 대규모 무탄소 전원”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전, 특히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과 재가동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른다.
한수원: ‘계속운전 + SMR 해외수출 + AI 기반 디지털 원전’ 3축 전략 가동
현재 한국의 26기 원전 중 상당수가 수명연장 심사를 받고 있다. 고리 2호기,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등이 대표적이며, 2030년까지 10기, 2045년까지 18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만큼 정책·규제·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고리 2호기의 경우 결정이 잇따라 연기되며 2년 넘게 중단 상태가 지속되는 등, 원전 정책의 불확실성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은 국내 논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 차세대 원전 기업 X-energy, 두산에너빌리티, AW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SMR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2039년까지 960MW, 장기적으로는 5GW 이상의 원자력 전력을 공급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AI 시대에는 안정적이고 탄소 없는 대규모 전력원이 필수”라는 빅테크 기업의 명확한 판단이 한국 원전 산업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수원 내부에서도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베스핀글로벌과 함께 ‘원전 특화형 초거대 AI’ 개발을 진행하며, 2025년까지 원전 건설·운영·안전·정비·규제 대응 등 7개 분야에 AI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전통적인 원전 운영 방식이 AI 기반의 디지털 원전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한국 원전 산업, 20년 만의 ‘구조적 모멘텀’ 맞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원전 르네상스 조짐이 뚜렷하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해 일본, 체코, 폴란드, 핀란드 등이 AI·전력안보·탄소중립 목표를 기준으로 원전 재가동, 신규 건설, SMR 도입을 적극 재검토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와 글로벌 에너지 분석 기관들도 “AI와 에너지 안보 영향으로 원전 산업이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국 원전 수출 전략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존의 “대형 원전 EPC 수출” 모델을 넘어, SMR 수출, 핵연료 공급, 디지털 트윈·AI 정비 솔루션, 운영·유지보수(O&M) 수출, 데이터센터 전용 ‘원자력 전력 패키지’로 가치사슬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AWS–X-energy–한수원 협력 모델은 한국이 ‘원전 패키지 공급국’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전력 = 원전” 단선 논리는 위험… 수요 불확실성·송전망 한계·재생에너지 병행이 변수
AI 전력 수요가 원전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전력 수요 증가가 원전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비중이 2030년 3%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도 존재하며, 일부 전문가들은 “AI 수요가 과도하게 전망되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재생에너지·에너지효율·수요관리 기술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무게가 있다.
특히 한국은 원전을 지어도 송전망 확충이 따라오지 않으면 전력 공급이 불가능한 구조를 갖는다. 이미 수도권과 대전·세종 등은 송전망 포화 상태에 근접했으며, 신규 송전선로 건설은 지역 갈등과 환경 규제로 인해 10년 가까이 걸린다.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확대의 ‘병행 전략’ 없이는 전체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AI 시대, 원전은 ‘부활’이 아니라 ‘재설계’의 시작
AI가 전력 수급의 중심 변수로 떠오르고, 미국 등 주요국이 에너지 정책을 생산 중심으로 조정하면서 한국 원전 산업은 다시 구조적인 성장 기회를 맞고 있다. 한수원은 계속운전, SMR 수출, 디지털 원전 혁신을 통해 이 기회를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확대는 재생에너지·송전망·가스발전·효율화와 함께 설계되어야 하며, 사회적 수용성·안전 규제·지역 정책 등 복잡한 요소가 얽힌 문제다. 원전은 ‘AI 시대의 전력 해법’이 될 수 있지만, 그 해법이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국가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AI가 만들어낸 에너지 대전환의 초입에 서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향방은 한국 원자력 산업의 향후 20년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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