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WBD 인수로 WB Games까지 품안에... 게임 산업 판도 바뀌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12-16 09:00:00
OTT가 게임 퍼블리셔를 삼킨 첫 사례
Netflix가 Warner Bros. Discovery(WBD)의 스튜디오·스트리밍 사업을 83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Warner Bros. 스튜디오, HBO Max, WB Games 등 핵심 자산이 모두 포함된 초대형 딜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디즈니-폭스 이후 최대 규모의 미디어 M&A"이자, "OTT 플랫폼이 전통 스튜디오를 통째로 삼킨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스트리밍, 스튜디오, 게임 등이 'Netflix'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 들어오면서, 콘텐츠 산업의 게임 룰 자체가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Netflix는 왜 WBD를 삼켰나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신규 구독자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기존 구독자를 유지하는 비용은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 제작비는 해마다 상승하는데, 그만큼 수익이 따라오지 않는다. Netflix를 포함한 모든 OTT 플랫폼이 수익성 개선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Netflix는 이 문제를 게임으로 풀려고 했다. 논리는 단순하다. 드라마나 영화는 보고 나면 끝이지만, 게임은 반복 플레이가 가능하다. 이용자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구독 유지율(LTV)이 올라간다. Netflix는 이미 90종 이상의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사내 게임 스튜디오도 설립했고,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도 테스트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브랜드 파워였다. Netflix 게임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타이틀이 거의 없다. 자체 IP도 부족하다. 때문에 게임 사업을 키우고 싶어도, 사람들이 "이 게임 하려고 Netflix 구독해야지"라고 생각할 만한 콘텐츠는 사실 상 전무한 셈이었다.
왜 WB Games인가
WB Games는 Netflix에 없는 것을 모두 갖고 있다.
우선 강력한 팬덤을 가진 장기 IP가 있다. 배트맨 아크햄 시리즈, 모탈 컴뱃, 레고 게임 시리즈, 해리포터 세계관의 호그와트 레거시(Portkey Games), 반지의 제왕 기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까지. 모두 수년에서 수십 년간 팬층을 쌓아온 프랜차이즈다.
더 중요한 건 이 IP들이 영화, 드라마, 게임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배트맨은 DC 영화로, 해리포터는 드라마 리부트로, 반지의 제왕은 아마존 시리즈로 이미 영상 콘텐츠가 존재한다. WB Games를 인수하면 Netflix는 같은 세계관의 콘텐츠와 게임을 동시에 기획하고 출시할 수 있게 된다. 크로스미디어 IP 체계가 완성되는 셈이다.
Netflix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성장했지만, 장기적으로 팬덤을 붙잡아둘 프랜차이즈 IP가 부족했다. 이번 인수는 그 갈증을 단번에 해소한다.
WB Games 편입이 만드는 게임 산업 파장
OTT와 게임의 수직 통합
이번 인수로 Netflix는 콘텐츠-게임-머천다이즈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드라마가 흥행하면 같은 IP의 게임을 출시하고, 캐릭터 굿즈로 연결하는 식이다.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모두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다.
Disney도 마블, 스타워즈 등 강력한 IP를 보유하고 있지만, 게임은 대부분 외부 업체에 라이선스를 주는 방식이었다. Netflix는 이번 인수로 자가 제작·자가 퍼블리싱 체계를 구축하며 Disney의 IP 전략을 한 단계 넘어서게 된다.
클라우드 게임 전략의 본격화
Netflix는 그동안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테스트해왔지만, 내세울 만한 대작이 없었다. WB Games가 합류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모탈 컴뱃, 배트맨 아크햄 시리즈 등 AAA급 액션 게임 개발 경험을 보유한 스튜디오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Netflix의 목표는 명확하다. 게임을 Xbox나 PlayStation 같은 별도 플랫폼에서 하는 게 아니라, Netflix 앱 안에서 바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Apple Arcade, Xbox Cloud Gaming, Amazon Luna와 직접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모바일을 넘어 콘솔·PC까지
현재 Netflix 게임은 모바일 중심이다. 스마트폰에서 간단히 즐기는 게임이 대부분이고, 콘솔이나 PC용 대작은 없다. 하지만 WB Games는 다르다. 콘솔과 PC에서 수십 시간 플레이하는 AAA급 게임을 만들어온 회사다. 이 역량이 더해지면 Netflix는 모바일, 콘솔, PC를 아우르는 멀티플랫폼 게임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집에서는 TV로 대작을 즐기는 경험이 하나의 구독 안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낮아지는 콘텐츠와 게임 사이의 벽
같은 회사가 드라마와 게임을 동시에 만들면 전환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외부 라이선스 협상도, 별도 계약도 필요 없다. 예컨대 배트맨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동시에 게임 "배트맨: 아크햄" 신작을 개발해 플랫폼 독점으로 출시할 수 있다. 해리포터 스핀오프 드라마와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 후속작을 연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넘어가고, 게임 유저가 드라마를 찾아보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용자가 하나의 IP에 쓰는 시간이 극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Netflix 입장에서는 구독 해지를 막는 강력한 장치가 생기는 셈이다.
게임 산업의 새로운 질문
Netflix의 WB Games 인수는 게임 업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게임은 PlayStation, Xbox 같은 콘솔이나 Steam 같은 PC 플랫폼, 또는 앱스토어를 통해 유통됐다. 게임사가 만들고, 플랫폼이 배포하는 구조가 수십 년간 유지됐다. 그러나 이제 OTT 플랫폼이 직접 게임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자체 서비스 안에서 독점 배포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앞으로 게임 IP를 누가 소유하느냐, 어느 플랫폼에서 플레이할 수 있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된다. 배트맨 아크햄 신작이 PlayStation에서 나올지, Netflix 앱에서만 플레이 가능할지가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콘솔과 PC가 지배하던 게임 유통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Netflix-WBD 딜은 그 변화의 첫 번째 대형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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