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트리밍 전쟁 ‘최종 빅딜’ 성사되나

X 기자

metax@metax.kr | 2025-12-11 07:00:00

넷플릭스, 827억달러에 워너브라더스 인수

넷플릭스(Netflix)가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이하 WBD)의 핵심 자산인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와 HBO·HBO Max를 통째로 품는 초대형 인수 계약을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기업가치 기준 약 827억달러(주식가치 720억달러)에 달한다.

이번 거래는 WBD가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부를 분리해 ‘디스커버리 글로벌(Discovery Global)’이라는 별도 상장사로 떼어낸 뒤, 남는 스튜디오·스트리밍 부문을 넷플릭스가 인수하는 구조다. 인수 완료 시점은 디스커버리 글로벌 분할이 마무리되는 2026년 3분기 이후가 될 전망이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의 영화·TV 스튜디오, 방대한 라이브러리, DC 유니버스와 ‘해리 포터’·‘프렌즈’·‘왕좌의 게임’·‘소프라노스’ 등 굵직한 IP들을 한꺼번에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기묘한 이야기’·‘페이퍼 하우스’ 등 기존 오리지널 라인업이 더해지면서, 사실상 “헐리우드 100년 역사 + 스트리밍 오리지널 10년”이 결합된 초대형 콘텐츠 플랫폼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거래 구조를 보면, WBD 주주는 주당 23.25달러 현금과 4.50달러 상당의 넷플릭스 주식을 받게 된다. 넷플릭스는 현금과 주식을 섞은 형태로 인수 대금을 지급하며, 최소 2~3년 내 연간 20억~30억달러 수준의 비용 시너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양사 이사회는 이미 만장일치로 거래를 승인했으며, 향후 규제 당국 심사와 WBD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스트리밍 사업 강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플랫폼이자 스튜디오”로 기능해왔으나, 이번에 워너브라더스라는 100년 역사의 메이저 스튜디오를 품으면서 전통 스튜디오와 테크 기반 스트리밍 기업의 경계를 사실상 지워버리게 된다. 동시에 WBD 입장에서는 부채 부담과 투자 압박 속에서 스튜디오·스트리밍와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을 분리해 가치를 재평가받으려던 전략이, 넷플릭스라는 매수자를 만나 ‘분할+매각’이라는 형태로 귀결된 셈이다.

인수의 전략적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콘텐츠 포트폴리오의 질적·양적 확대다. 넷플릭스는 이미 전 세계 가입자 기반과 막강한 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여기에 워너브라더스와 HBO의 프리미엄 드라마·영화 IP가 합류하면, 가입자 유지와 신규 유입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무기가 된다. 특히 극장 개봉, 스트리밍 독점, 머천다이징, 게임·테마파크 확장 등 장기 프랜차이즈(IP) 기반의 수익 극대화에 있어서 과거 디즈니가 보여준 모델을 넷플릭스도 본격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제작·투자 효율성이다. 대형 스튜디오와 플랫폼이 결합하면, IP 발굴부터 제작, 글로벌 배급, 2차·3차 활용까지의 밸류체인을 하나의 데이터와 의사결정 체계로 통합할 수 있다. 이는 중복된 제작 인력·마케팅 조직 통합, 전 세계 촬영·포스트 프로덕션 인프라 최적화 등을 통해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가 연간 20억~30억달러의 비용 절감을 공언한 것도 이 같은 통합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것이다.

셋째, 경쟁 구도의 재편이다. 이미 디즈니, 컴캐스트(NBC유니버설), 아마존(MGM 인수), 애플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콘텐츠+플랫폼’ 통합 전략을 추진해왔다. 여기에 넷플릭스–워너브라더스 결합이 더해지면, 전통적 의미의 ‘빅5’ 스튜디오 체제는 완전히 해체되고, 테크 플랫폼과 결합된 초대형 콘텐츠 그룹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구도가 자리 잡게 된다. 경쟁사들의 추가적인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촉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규제 당국의 반독점 심사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시장에서 이미 절대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고, 워너브라더스는 영화·TV 제작에서 오랜 기간 핵심 플레이어였다. 이런 두 축의 결합이 ‘소비자 선택권 축소’나 ‘콘텐츠 가격 협상력 과도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규제기관과 정치권에서 제기될 수 있다. 인수 발표 직전까지 콤캐스트, 파라마운트 등 다른 사업자들도 WBD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그만큼 워너브라더스 자산이 시장 지배력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워너브라더스와 HBO가 그간 유지해온 ‘프리미엄 브랜드’와 넷플릭스 특유의 대량·다변량 콘텐츠 전략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관건이다. HBO는 적은 편수로도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략으로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고, 넷플릭스는 글로벌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오리지널을 쏟아내며 이용 시간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인수 이후 프로그램 편성, 예산 배분, 크리에이터 계약 구조 등이 어느 쪽 기조에 더 가깝게 정렬될지에 따라, 시청자 경험과 크리에이터 생태계 모두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번 인수는 ‘콘텐츠 선택권의 확대’와 ‘구독 구조의 복잡화’라는 상반된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단일 넷플릭스 구독으로 워너브라더스·HBO·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모두 볼 수 있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통합에 따른 가격 인상, 콘텐츠 묶음 판매 전략, 지역별 독점권 재조정 등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특정 작품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기존 타 플랫폼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와 제작사에는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열린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이자 메이저 스튜디오를 겸한 단일 파트너와 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비·마케팅 측면의 스케일 메리트가 커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 거대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 심화되면서, 협상력 불균형과 수익배분 문제, 작품의 장기적 라이브러리 가치에 대한 통제권 상실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부분은 이미 음악 산업에서 ‘스트리밍 플랫폼 중심 구조’가 불러왔던 논쟁과 유사한 양상을 띨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도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유럽·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로컬 오리지널 투자를 확대해 왔고, 워너브라더스 역시 각국 제작사와의 공동 제작 경험이 풍부하다. 두 회사의 결합은 장기적으로 더 큰 글로벌 제작·투자 풀(pool)을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유통망과 프랜차이즈 중심의 대형 프로젝트에 자원이 집중될 위험도 있다. 한국 제작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잡되, 특정 플랫폼 의존도를 과도하게 높이지 않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인수는 “스트리밍 전쟁의 종결전”이라기보다, 테크 플랫폼과 전통 스튜디오가 완전히 뒤섞이는 새로운 경쟁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규제 심사, 조직 통합, 브랜드 전략 조정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인수가 계획대로 마무리된다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향후 10년의 경쟁 구도를 다시 그려야 할 만큼의 구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